영남루에서 표충비가있는 홍제사로 간다.표충비는 왜 표충사에 없을까?관심없는?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충사에 당연히 표충비가 있을꺼란 생각을 하고있다가..막상 이사실을 알고나면
당황해하기도한다.표충사는 표충사당을 영정사로 옮기면서 표충사로 이름을 바꾼것이고,
홍제사 경내에있는 표충비는 영조18년(1742)남붕선사가 경산에서 가져온 오석으로 세웠다.
표충사는 밀양 동부권인 단장면에있고,표충비는 밀양서부권인 무안면에 있다.
▲표충비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표충각..위치가 표충비각왼쪽..홍제사와 표충비각 중간쭘이라면 맞을듯하다.
▲표충각안 왼쪽에 계시는 고 박대통령내외분 영정
▲홍제사
▲홍제사에서 표충비각과 통하는 문..
▲향나무(경남 기념물 제 119호)
이향나무(무안리 향나무)는 수령이 300여년이 넘는다고하는데,보통의 향나무는 위로
곧게뻗지만 이 향나무는 원가지를 자르고 곁가지를 팔방으로 뻗게함으로서 녹색으로된 큰우산을
펼쳐세운것같은 지금의모양이 되었다.1742년(영조18년)사명대사 5대법손인 남붕선사가 사명대사
표충비를 이곳에 세우고 기념으로 심은 향나무이다.
▲표충비각과 표충비
표충비는(1972년 경남유형문화제 15호로 지정)"사명대사비"로도 불린다.높이 약4m, 너비약 1m,
두께54.5cm이다.임란당시 승병을 이끌어 왜병을 크게무찌르고,일본에 끌려간 3천여명을 데려온
사명대사의 높은뜻을 기리기위해 남붕선사가 경산에서 돌을 가져와 건립했다.이 비가
유명해진것은 국가적으로 큰사건이있을때를 전,후해서 비석면애 땀이 맺히기때문이다.
이런이유로 "땀을 흘리는 비석"이라고도 불린다.
▲사명대사를 기리는 비석(유허비)
표충비를 보고 이동한곳은 사명대사생가지와 유적지다.주차장에내리면 오른쪽에 생가지가
있으며 정면에는 유적지가 있다.먼저 생가지를 찾았다.경남 기념물 제116호이며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곳이라고 알려져있다.현재 사당인 숙청사와 사명대사(송운)가 태어나서
자란 육영당,사명대사가 거처하던 사명당등이 있다.생가지의 뒷산은 천리를달려온 목마른말이
엎드려물을 먹는형상이고,주산은동자형이며 그아래 좌청룡,우백호가 감돌고 안산은범이엎드려
있는형국이라하여 삼국의 명장이날 명당이라했다.
▲사당인 숙청사이다.
▲사명대사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곳이다.
▲사랑채
▲안채(육영당)
▲송운대사 생가터에서 담넘어 숙청사가 보인다.
▲안채와 장독대
▲사명당 유적지로 가는길..멀리 충의문이 보인다.
사명대사유적지는 밀양출신인 사명대사의 호국정신과 애민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위해
1999~2006년까지 부지면적 49.146㎥에 사명대사 동상과,기념관,추모공원,기념비등을 조성해서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있다.
▲성장광장
▲사명대사 기념관
사명대사기념관은 만남의장,이해의장,확인의 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영상실도 있다.사명대사의
가계도,대사의 성장과정,득도와 대사의 활약상으로 구성한 공간이라고보면된다.
▲추모광장에 있는 사명대사 상이다.
사명대사는중종39년(1544)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풍천임씨집안의 둘제아들로 태어났다.
13세때(명종11년)황여헌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다가 그해가을 황악산 직지사로 가서
신묵화상에게 머리를깍고 선문에 든다.금강산에 들어가 수도를하던중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 승병을 모아서 의병장으로 활약한다.선조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했다.
그뒤 병을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입적을 했다.
꽃새미마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155번지
☎055-391-3825
꽃새미마을은 200여년전부터 밀양손씨,경주이씨,평산신씨가 함께살고있는 산골농촌마을이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종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으며 맑은계곡과 산자수명한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마을입구에 장승과함께 어우러진 108돌탑이있다.
▲꽃새미마을안에있는 참샘허브나라
참샘허브나라는 각종체험을 할수있는 곳이며,일종의 허브농원이라고 보면된다.숙박도
가능하며 허브식당도 운영중이다.크다고 말하긴 어렵지만,볼거리도 많고 아기자기하다.
▲이 식당에서 허브오리백숙을 점심으로 먹었다.
▲일반 오리백숙과는 다른 맛이느껴지던데..맛을표현다는게 어려워서..그냥 맛있다..라고 쓴다..
▲실제 마늘이 아닌 종이마늘이다.
▲농경유물전시관과 내부
한바퀴 돌아보는데 약 40여분정도면 충분할듯싶다.멧돼지바위라고부르는 닮은바위도 있고,
향기체험,인절미,도예,손두부체험장도있고,야생화전시장,허브하우스등 오밀조밀,아기자기하다.
▲달바위..조각배위에 둥근달이 얹혀있는형상이라는데,숨박꼭질하며 놀던추억이있는바위란다.
▲방동저수지와 함께하는 솟대와 돌탑(꽃새미돌탑길)
점심도 먹고,눈요기도 허브로 실컷하고..다음으로 찾아간곳은 이번투어의 마지막코스인
만어사로 움직였다.만어사(萬魚寺,조계종15교구 통도사의 말사)는 수로왕5년(46년)에 창건됐다
가락국의 옥지에살던 독룡과 만어산에살던 나찰녀가 서로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내려 오곡이
결실을맺지못하자 수로왕이 부처를청하여 6비구와 1만천인들을 데려와 독룡과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이를물리쳤다.이를 기리기위해 수로왕이 이절을 창건했다는기록이다.
▲만어사대웅전(전통사찰 제4호)과 삼층석탑(보물제466호)
▲특별임무를 수행하려고 대기중인 작은?버스.
만어사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산4번지
☎055-356-2010
만어사를 가기위해 작은버스로 갈아타야한다.일반승용차는 만어사까지 올라갈수있으나
우리가 타고다니는버스는 길이좁은탓에 만어사까지 올라갈수없어 작은버스를 부른모양이다.
이 버스로 옮겨타고 만어사를다녀와 우리는 큰버스로 바꿔타고 서울로 출발..작은버스는
밀양시로 돌아갔다.만어사까지 오르내리는길은 좋은길이라고는 못한다.커브도 심하고..
좁은산길을 꼬불 꼬불 오르고 내려야하기때문에..그 좁은산길을 많은차들이 오르내리는게
신기?하다.
10여분을 올랐을까?만어사주자창에 내리자마자 너나 할것없이 모두들 경석(磬石)이라고부르는
돌더미들?로 간다.지천으로 깔려있어 장관이다.어산불경어석은 지천으로 깔려있는물고기형상의
너덜겅과 미륵전에있는 미륵불바위를 일컫는말이다.크고작은바위들 2/3정도가 쇠소리를낸다.
일연대사는(삼국유사)그의 저술에서"친히와서 참례하고보니,분명히 공경하고 믿을만한 일이
두가지있다.동중의 돌이 모두가 금과옥의 소리를낸다는사실과,멀리서보면 나타나고,가까이서
보면 사라져,부처영상이 보였다 안보였다하는것이다"라고 하였다.
돌을 두드리면 돌소리를 내는게 당연하지만,쇠소리,종소리,목탁소리들이 들리니 당연 감탄을
하게만든다.돌이내는소리를 글로표현키어려워 동영상을 붙이는데,전문장비가 없이 촬영을
한거라서 오디오가 마음에 안들지만,볼륨울 크게하고 조금신경써주면 신비스러운 경석의울음을
들을수있다.어떤?웹에서는 동영상을 안받아주던데..어쩐다??ㅠㅠ
▲볼륨을 UP하시고 크게보시면 더 좋은데..
▲용왕님의 아들이 모셔진 미륵전이 멀리보인다.
▲신비한 돌이다.불전을 내고 번쩍 못?들어올리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거 같다.
▲삼층석탑뒤로 삼성각이보인다.
▲최근 사찰들을 가면 자주,쉽게 눈에 뜨인다.이것도 유행일까??
▲미륵전옆에있는 소리내는돌인데..희게보이는건 소리를 듣겠다고 두드린흔적들이다.
▲미륵전과 동해용왕의 아들이 변했다는 미륵바위
▲미륵바위가 워낙 커서 전안에 못모신걸까???미륵전밖까지 나와있는 미륵바위
*더많은사진을 큰사이즈로 보려면 http://cafe.daum.net/lovedang/Hqia/978
만어사를 내려와 큰버스로 바꿔타고 서울로 출발을했다.워낙먼곳이라 속리산휴계소 한곳만
들러 잠시 몸무게?를줄이고 부지런히달려 8시를 조금넘긴시각에 1호선 종각인근의 전철역
입구에서 내렸다.2일간을 함께해서 정이든 일행들과 작별을나누며 집으로 향한다...
*1박2일간 "밀양3대신비를찾아서"동행취재의 기회를준 밀양시청과 웹투어관계자분들께
감사를드린다.. 밀양시청 http://www.mir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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